수년전 잡지에 유년시절 살아온 나와 친구 형찬이를 글로 조명하였던 일이있다
어린시절, 이발소를 하였던 부친때문에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비아냥이 있었다
이발을 할때 바리깡이라는 이발기계가 한참후에 개발되었고
아버지는 전지 가위처럼 두손으로 왔다갔다 하면 머리가 깍이는 이발기계를 사용하셨다
이발기계가 까딱까딱 소리를 내면서 머리가 깍인다,
그래서 우리고향 장흥회진에서 좋은 말은 이발쟁이 아들이요 나쁜말은, 까딱이 새끼라고
놀려된다, 어린시절 얼마나 짜증나는 말인가.
농경사회에서 농사꾼은 양반 대우를 받지만, 기능인은 비아냥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아버지 이발기술은 당시 하루 벌면 송아지 한마리 살수있는돈을 벌수있으니
농사일 보다 헐씬 나은일이다.
회진 초등학교에서 나는 항상머리가 연애인들 머리처럼 단정해서 누나들에게서 인기가
대단하였다
가난한집 아이들은 부모들이 가위로 싹둑싹둑 머리가 요상하였다
그런데도 동네분들은 무시하는 별명으로 많은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친구가 있다.
바로 착한 형찬이다. 부모가 객지인 선학동 마을로 이사와. 형편이 어려우니 엿장수로 연명하니
온가족이 기를 펼수가 없었고. 가족중에서 친구 형찬이가 제일 잘생기고 똑똑하였다
아버지에 직업때문에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이없었다.
학교에서 소풍가면 형찬이 부모는 엿자판을 가져와 장사 하신다
어린 형찬이는 편할수 없었을것이다.
친구형찬이도 나처럼 엿장수 새끼라고 놀려되는것을 피할수 없었을것이다.
나는 고학으로 말할수없는 고생을 하였다
40대시절 친구들 모임에서. 친구 형찬이 근황을 알수 있었다
부산에서 노총각으로 살고 있다한다
도시에서 내성적인 성격은 여성에게 대쉬 할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부모가 어떻게든
배필을 마련해줄 능력이 있는 부모들이 아니라
본인도 사기성도 없고 순진해서 지금도 홀로 산다면 안타까운 착한 친구다
요즘 젊은이들도 독신이 유행처럼 번진다
부모들이 기반을 마련하여주지 않으면 결혼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옛날에는 장가 가기위해 생산직을 관리직으로 속이고 부잣집 아들인양 속여 결혼하고
열심히 일해 극복하여 우리 동시대에 살았던 우리또래들은 기반을 갖추기도 하고
좋은 부모로 자리매김 하였다
순진한 나의 친구 형찬이 부산에서 잘살고 건강하길 기원한다
오늘은 수년전 잡지에 기고한 친구와 나의글을 요약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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