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9년된 비디오테프를 usb에 저장의뢰하다,

장진도 2022. 3. 5. 20:34

나는 9남매중에7째다, 장남인 형님은 부모님을 1.2년 모시다,

분가를 해서 빛더미에 파산 지경에 이르면, 부모님 모신다고 집에 들어와서

살다, 빛이 청산되면, 또분가 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수도없이 되풀이 된 일을

보아왔다, 결국은 아버지가 집 재산을 다물려주고, 남의집 행랑채로 거처를 옮기고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몇년동안 뼈빠지게 고생하였다, 집한체를 5칸짜리 매입하고

이사날짜를 잡았으나, 이사날 20여일 남겨두고 한많은 세상을 떠나다,

남의집에서 죽음을 해서는 안된다고, 장남에게 준 집에서 운명하신다고, 업어서 올라 가는데

얼마나 무거운지, 지금도 생생하다, 이틀후 운명하시고, 장례는 2일장으로 장례를 치러야했다.

장남인 형님이 능력도 없고 그래서, 다음날 관에 입관한후, 상여도 없이 장례를 치렀다,

부자들은, 돼지도잡고 떡도하고 조의도 받는다, 우리는 너무나 가난하고 해서, 돼지는커녕 상여도 없이

장례를 치룰때 나의 나이 18살 나는 결단하다. 만약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돼지도 몇마리 잡고

 장례다운 장례를 하겠다고 말이다, 정말로 고학으로 공부하고 죽으면 죽으리다 각오로 살왔다,

 부산에서 결혼해서 살때, 93년4월1일날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소풍을 가시다,

 부고를 듣고 고향에 돌아와서, 어머니 장례는 교회장으로, 돼지도 3마리잡고 아마 유명인사 장례하는것같이

 장례일정 내내 비디오 촬영을 하였다, 올해29년째이다,

 비디오 플레이가 고장나고 볼수도 없고 괜히 마음이 울적해질까 해서 멀리한 비디오다,

 오늘은 충장로 금남전자에서 usb로 전환의뢰하고 돌아오다, 다행하게 비디오 테이프가. 곰팡이가

 안피어 천만다행이었다, 비디오플레이가 정상일때는 한번씩 보다가, 요즘은 비디오 테프는 무용지물이되다,

 비디오기기도 진화되어 요즘은 비디오 테이프가 없다,

 세상은 많이 변하다, 미뤄왔던 일을 한 셈이다,

 아마 전남 장흥군에서 울 어머니 장례처럼 장례를 치룬 가정은 찾기가 어려울것이다

 자랑스런 기록물이다,